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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백일장2 01

내 언어의 거울인 손자

김수동 안산고등학교 퇴임

이제 월령으로 33개월이 된 나의 손자 이야기이다. 손주는 내가 평생을 근무하던 교직에서 퇴직하던 해에 출생했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일주일의 반을 이 녀석의 보육에 소일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사돈 내외가 봐 주시기에 우리는 주위 분들에게 일주일에 2.5일 손주를 돌보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남들은 퇴직하고 나면 심심해서 어쩌나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손주를 보육하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심심할 일도 없고 재미나고 즐거운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젊었을 때 내 아이를 키울 때는 인문계 고교에서 진학지도하느라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출근하고 퇴근도 대부분은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에 저녁 늦게 집에 왔었다. 그러니 내 아이들이 언제 첫 언어를 구사하는지도 모르고 남매를 키웠다. 그랬지만 나는 요즘 손주를 통해 아이들이 유아기에 언어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언어습득에서 활발한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이 녀석은 요즘 들어 말하기 능력이 부쩍 늘었다. 1년 전만 해도 기껏해야 단어 몇 개를 단순 반복하는 정도였다. 돌이 지나면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놀이교실을 반년 정도 다녔다. 그 후 다행히도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의 직장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우리 부부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 녀석의 등·하원을 도와주고 있는데 이 시간에 재미나고 놀라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 작년에 어린이집 만 1세반에 다닐 때에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해 걱정을 했다. 이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잘못 돌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전문서적도 찾아보고 상담도 해보았다. 그런데 지난봄부터는 갑자기 문장으로 술술 말도 잘 하고 기억력도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하곤 요즘 우리 부부는 이 녀석 앞에서 더욱 조심히 언어생활도 하고 아이의 자존감을 증대시키는 일에 주력하며 우리 나름의 애를 쓰고 있다.

며칠 전 어린이집 하원 때의 일이다. 요즈음은 코로나19 감염 예방 차원에서 보호자가 등·하원 때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등원할 땐 문 앞에서 들여보내고 하원할 때 데리러 오는 방법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그리고 보호자도 한 사람만 오도록 해서 둘이 가도 한 사람은 차 안에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어린이집 앞에 차를 주차한 뒤 집사람이 차에 기다린 상태로 있고 내가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차에 태워서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집사람이 나에게 묻기를 “오늘은 어느 선생님이 데리고 나왔어요?” 하기에 나는 그 선생님의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좀 뚱뚱한 체격을 지닌 선생님이어서 혹시 아이가 듣고 그대로 따라 할까 봐 얼떨결에 한다는 말이 “몸통이 큰 선생님이던데 그분 이름이 뭐예요?” 하며 집사람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몸통이 큰 선생님”하며 깔깔대며 웃었다.

그 날 저녁에 녀석이 엄마, 아빠와 함께 오늘 있었던 ‘몸통이 큰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놀자 엄마가 무슨 말인가 궁금해 아들에게 물어본 모양이었다. “선생님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가 자기 이름이 있잖아. 밍이도 선생님 부를 때는 ○○○선생님!”하며 이름을 불러주어야지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부르면 안 된다고 일러주면서 ‘몸통이 큰 선생님’이라는 별명은 누가 했냐고 물어본 모양이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하셨어”하고 대답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딸아이가 내게 “할아버지는 우리 아들 앞에서 선생님 이름을 모르면 이름을 모른다고 하셔야지 그분의 신체적 특징을 이야기해서 혹시 어린이집에 가서 우리 할아버지가 선생님을 ‘몸통이 큰 선생님’이라고 하셨다고 이야기라도 해 버리면 어떡하냐”며 딸아이는 내게 아이 앞에 말조심을 하셔야겠다고 부탁했다. 듣고 보니 아차! 어제의 그 말은 이미 해버렸고 앞으론 어린 손자 앞에서는 정말 말조심을 해야겠구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니 ‘그 아이를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하지 않는가? 딱 맞는 말이다. 부모와 나란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걸음걸이를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면 그 폼이 부모와 흡사하기도 하다. 나는 손주 양육에 참여하면서 집안 어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언어생활이 그대로 유아들의 성장발달과정에 투영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의 우둔한 이런 실수 고백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TP백일장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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