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연금홈페이지로 연결 사학연금웹진홈
역사 탐구 01

돌아올 수 없던 사람들이 찾은 희망

단 한 번의 이민이었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000여 명의 사람이 1905년 멕시코행 배에 오른다. 허기를 채워보려 했던, 조금 더 잘 가르쳐 보려 했던 희망과 두근거림의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태평양 건너 먼 타향에서 사무치는 외로움과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견뎌야 했다. 이들의 소원은 죽기 전 고향 땅을 다시 밟아 보는 게 다였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멕시코의 한인들은 그들 방식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한다. 돌아올 수 없던 그들은 그렇게 이민의 역사를 독립운동의 역사로 확장해 나간다.

글|사진.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물포를 떠난 사람들

1905년 4월 4일 제물포에서 멕시코 이민 배에 오른 1,033명. 이들은 4년간 단기 노동 계약을 맺고 태평양을 건넌다. 역사는 이 이민을 단 한 차례로 끝난 불법 이민 사례로 기록하고 있다.

한인의 아메리카 이민은 1902년 12월 시작된 하와이 노동 이민이 그 시초다.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1905년까지 이뤄진 하와이 이민 규모는 7,500여 명 남짓이었다. 반면 멕시코 이민은 마이어스란 이민 브로커가 불법적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마이어스는 멕시코 유까딴 지역 애니깽(Anniquin, 우리말로 용설란이라 불리는 이 식물은 높이 1~2m고, 가시 달린 다육질 잎 20~30개가 달린다. 한인들이 애니깽 밭에서 일할 당시에는 선박에서 쓰이는 밧줄의 원료가 됐다.) 농장주 협회 대리인 자격으로 1904년 8월 한국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노동 이민자를 모집하려 했으나, 멕시코 이민에 대한 평이 나빠 실패하고 만다. 이에 마이어스는 일본 이민 회사인 대륙식민회사와 결탁해 한국에서 노동 이민자를 모집하기로 한다.

한국에 들어온 마이어스는 전국 주요 항구에 이민 모집 사무소를 개설하고 황성신문에 모집 광고까지 낸다. 모집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황성신문에 실린 허위 과장 광고는 멕시코를 파라다이스처럼 묘사했고 하와이에 간 한인들 소식도 이민에 대한 환상을 부추겼다. 여기다 러·일 전쟁으로 뒤숭숭해진 사회 분위기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이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어떤 고난이 닥칠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순진한 대한제국 백성들은 그렇게 제물포에서 영국 국적 ‘샌 일포드(S.S. Ilford)’호에 올라 묵서가(墨西哥)라 불리던 멕시코를 향해 떠난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항해는 시작부터 파라다이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좁은 선실에서 한 달 넘게 지독한 뱃멀미를 견뎌야 했고 최악의 위생 환경 속에서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어른 2명, 어린이 1명이 사망했고, 1명이 태어난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착한 곳은 멕시코 서부 해안 살리나크루즈 해변이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또다시 기차와 배를 타고 최종 목적지 메리다에 도착해 뿔뿔이 농장으로 분산 배치된다.

이민의 역사가 독립운동의 역사로

그렇게 지옥 같은 4년을 버틴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경술국치(1910년)였다. 그럼에도 한인들은 믿기 어려운 일을 해낸다. 첫 번째로 멕시코 땅에서 독립군양성학교(숭무학교)를 세우고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등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또 한글학교를 설립하고 2세들에게 모국어와 민족의식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해방 이후에는 조국을 돕기 위해 구제의연금까지 보내며 멀리서 고향을 그리워한다.

초창기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메리다에는 독립운동가 이종오(1869~1946)의 묘소가 남아 있기도 하다. 그는 메리다 한인사회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1946년 9월 9일 사망해 메리다시 공동묘지 판테온 헤네랄(Panteon General)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한글로 ‘1946년 9월 9일 별세, 향년 76세, 본은 명쥬 리시 죵오 분묘, 원적 대한 경성’이라고 쓰여 있다. 묘지에는 그의 손자 이상철과 그와 같이 멕시코로 온 사라 김(Sara Kim), 페르난도 김(Fernando Kim), 마뉴엘 산체스(Manuel Sanchez) 등이 함께 묻혀있다.

1918년 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그는 이기종, 안창호 등과 함께 연설했다. 안창호는 메리다에 체류하는 동안 이종오의 집에 머물며 독립운동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재미있는 부분은 조선 왕족으로 알려진 이종오가 멕시코 이민 배에 오를 때 내시 등을 대동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해외 망명 정부 건설 등 이른바 ‘신한국 건설’이란 고종의 밀명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역사 탐구 02 과거 숭무학교가 있던 터인데 현재는 시장 건물이 들어서 있다

기억해야 할 이름 김익주, 식당서 번 돈 독립자금으로

또 멕시코에서 독립운동가 김익주(1873~1955)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05년 32세 나이로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멕시코 이민 배에 올라 메리다 근처 초촐라(Chochola)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계약 노동 기간이 끝나자 탐피코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며 큰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가장 빨리 성공한 한인이 된다. 김익주가 지은 한국식 정자 모양 2층 식당은 당시 탐피코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이었다. 이렇게 모은 재산을 독립 자금으로 썼는데 경영하던 식당까지 모두 팔아 독립운동에 보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역사 탐구 03 멕시코시티에는 독립운동가 김익주의 무덤이 남아 있다

이벤트보기

이벤트보기

지난호보기

지난호보기

독자의견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