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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백일장

듣지 못하는 복돌이

위영일 동우대학교 퇴임

집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 한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텃밭을 일구고 있다. 텃밭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적적하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고라니와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애써 가꾼 텃밭을 망친 적이 있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생각 끝에 이왕이면 주인 잃은 유기견을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동물보호센터에서 6개월 정도 된 암놈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곳 직원이 종자가 괜찮은 강아지라고 해서 냉큼 데려온 것이다.

진산이(아내)는 데려온 강아지를 보자마자 여우처럼 생겼다며 여우라고 부르자고 해 그 강아지 이름은 여우가 되었다. 여우는 대견스럽게 사람의 말귀를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내가 자기 주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몇 차례 강아지를 키웠지만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강아지는 처음이라 땡잡은 기분이었다.

나는 집에서 텃밭을 오가기 때문에 가정집에서 키우는 것처럼 여우와 항상 같이 있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텃밭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여우는 외롭고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여우의 표정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애처로웠다. 그래서 여우와 친구가 될 만한 강아지 한 마리를 더 데려오기로 하였다. 친구가 있으면 여우의 외로움이 덜 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텃밭이 있는 동네에서 두 달쯤 된 종자 예측이 어려운 잡종 수놈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올 수 있었다. 텃밭으로 데려온 강아지의 재롱은 여느 강아지와 똑같았다. 강아지 이름을 지어줄 때 진산이는 예쁜 이름을 짓느라고 머리를 짰지만 나는 복덩어리가 들어온 거라 생각하고 복돌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진산이는 처음에 반대했지만 결국 복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우도 복돌이를 좋아했고 슬픈 표정도 사라졌다. 그런데 며칠 후 복돌이가 전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뿔싸 이를 어찌할꼬?’ 복돌이를 먼저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했지만 진산이는 한 번 맺은 인연을 장애가 있다고 끊을 수는 없다며 펄쩍 뛰는 바람에 어쩔 도리 없이 키울 수밖에 없었다.

복돌이를 데려온 지 다섯 달. 복돌이는 건강하고 늠름하게 컸지만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반응이 없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복돌이에게 화가 났다. 이제는 인연을 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생활정보지에서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나는 복돌이를 광고한 사람에게 맡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전화를 했다. 복돌이에 대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키울 수 있겠냐고 물으니 괜찮다며 잘 키우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와 텃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텃밭에서 복돌이를 데려갈 사람을 기다리면서 혼자 결정해 복돌이를 보낸 것을 진산이가 알게 되면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역정을 낼 것이 뻔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무리 미물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안 든다고 맺어진 인연을 헌신짝처럼 버리면 어떻게 해요! 진산이의 앙칼진 목소리와 성난 얼굴이 눈에 선했다. 아마 이 일로 여생을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복돌이를 보내기로 굳게 마음을 먹은 바였다.

복돌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복돌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 순간이 너와 마지막 시간이 되는구나.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날 거니까 새 주인과 행복하게 잘 살 거라’라고 속삭이며 이별을 준비했다.

복돌이는 내 속삭임을 알아듣기나 한 듯 새삼 내 품에 머리를 묻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주인님. 가고 싶지 않아요. 여우 누나랑 여기서 같이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복돌이의 사정을 아는 낯 모를 사람도 기꺼이 키우겠다고 하는데 내가 어찌 그 사람보다 못할 텐가.

‘그래 복돌아 우리 맺은 인연 여우와 함께 끝까지 가자꾸나.’

“여보세요. 강아지를 데리러 오기로 한 분이죠? 제가 마음이 바뀌어서 강아지를 그냥 키우기로 하였습니다.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천근만근 무겁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하마터면 굴러들어 온 복덩어리를 내팽개칠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여우보다 복돌이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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