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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 백일장 1

옛 것에 대하여

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퇴임

헌책방에서 골동품을 사고팔 때가 있었다. 말이 골동품이지 엿장수나 고물장수가 거둬오는 잡동사니 것들이 고서점 안팎을 채웠다. 무슨 책인지 모를 검누렇게 변색된 한문 고서적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고 찢어진 병풍도 보였다. 언제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자기류 호로병 같은 것들이다.

옛 살던 집에서 시내 중심가 쪽으로 가려면 질러가는 긴 골목길이 빨랐다. 하수도 시설이 안 된 골목길 위 구불구불한 도랑에는 구정물이 쉼 없이 흘러 역한 냄새를 풍겼다. 이곳저곳 실지렁이 떼 뭉치가 물 흐름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수질이 최악임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구경거리였지만 여자아이들은 징그럽다고 야단들이다. 고샅길 한쪽에는 양철지붕의 적산가옥 사이로 듬성듬성 초가집이 보였고 하수가 담벼락을 끼고 흐르는 반대편에는 일제 강점기 때 지었던 규모가 꽤 큰 수용소가 있었다. 일본인들이 살던 곳인데 해방과 더불어 도시로 나온 영세 난민들이 모여 형성된 곳으로 오랫동안 개발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이었다. 우마차도 못 다니는 좁은 골목길을 죽 내려가면 시내 초입이다.

골목 끝 길모퉁이에 헌책방이 있었다. 책방 가까이 가면 퀴퀴한 냄새가 난다. 곰팡이에 찌든 온갖 옛 물건에서다. 밖에서 보는 가게 안은 좁고 침침했다. 50줄이 넘게 보이는 가게 주인은 언제나 그 자리 둥근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책방 간판을 걸어놓고 골동품 장사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책방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족히 10여 년이 넘는 것 같다. 값나가는 골동품은 따로 보관하는지 밖에 내놓은 것들은 작은 불상, 자기 물병이나 술병, 떡살, 호롱, 베틀에서 사용하는 북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가게의 모습이 선하다. 그곳 골동품상에서 내가 처음 구입한 것은 드라마의 주막집에서 흔히 보는 자기류 막 술병 한 개와 주둥이가 좀 나간 작은 단지다. 골동품의 가치가 있든 없든 백자 술병과 난초 같은 그림이 장난처럼 그려져 있는 단지는 오랜 세월 나의 서재 책꽂이 선반 위에 있다. 그 뒤 오가다 산 것들 몇 개가 더 있다. 나는 마음 한 곳에 옛것을 담으려는 심성이 있음을 부인치 않는다. 회귀의 본능이다. 서재 책꽂이에 거의 60여 년이 넘는 책들이 20여 권 꽂혀있다. 시집, 수필집이 대부분이다. 세로 인쇄체인 책들이 나온 연도는 단기로 표기되어 있다. 표지부터 속까지 짙누렇게 변한 책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내게는 골동품이란 생각을 한다.

고교 졸업 즈음 방황할 때가 있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修讀五車書), 닥치는 대로 많은 책을 읽었다. 문학에 마음이 간 것도 그때다. 길거리 난전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책을 고르는 것이 내게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비싸지도 않았지만 문학서가 많아 길거리 책방을 자주 찾았다.

당시 난전 책방이 시내 몇 곳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난전 주인은 리어카에 책을 싣고 와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 언저리에 자리를 깔고 온갖 책을 흩어 놓았다. 뜨거운 햇볕에도 차일 같은 것은 없었다. 요령껏 책을 골라 흥정을 하면 그만이다. 책을 고르려면 시간도 많이 걸렸고 여러 책을 들여다봐야 했다. 새 책도 섞여 있었지만 깨끗하게 사용한 헌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왜 사람들은 책을 보관하지 않고 내다 팔았을까.

그런 책들이 내 곁에 있는 것이다. 책을 펼치면 책면이 부스러져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것도 있다. 가족 어느 누구도 서재에 있는 나의 고서(古書)를 들쳐보는 일이 없었다.

아마 속으로는 보지도 않는 낡은 책을 애지중지하는 나를 이상히 여겼을지도 모른다. 옷 정리할 때마다 입지도 않는 옷을 버리지 못하는 아내의 마음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읽지도 않는 고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책과 함께 살아온 나의 삶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가할 때면 책을 한 권씩 뽑아 제목을 훑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살아온 젊은 날들의 그림자가 책 속에서 파노라마가 되어 일렁거리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나는 골동품과 고서를 구별하려 들지 않는다. 골동품에는 옛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고 오래된 책에는 나의 혼과 숨결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골동품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된 옛 가구, 고서화, 병풍, 도자기 같은 것들을 연상하고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려고 한다. 내가 가진 고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간수한다 해도 골동품이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마음속의 귀중한 골동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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