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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 백일장 2

타이완, 그곳에서 역사를 보다

정선숙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퇴임

해외여행을 할 때면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 여행할 나라의 사람 사는 모습, 아름다운 자연경관, 오래된 건축물과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재작년 5월 3박 4일 일정으로 타이완의 북쪽을 다녀왔다. 타이완의 5월 초순 날씨는 서울보다 6~7℃ 높은 22~25℃로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타이완 사람은 중국 사람처럼 시끄럽지 않았고 비교적 조용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타이베이 시내의 건물은 회색이나 갈색 톤으로 조금 우중충한 느낌이었고, 싱가포르처럼 산뜻하거나 세련된 맛은 없었다. 자연경관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은 우리와 비슷해 보였다.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있는데 중국과 타이완은 대륙과 섬으로 분리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왕래를 못하는데 중국과 타이완 사람은 서로 왕래하고 있다. 단절된 우리의 남과 북을 생각하면 왕래할 수 있는 점은 부러운 일이다. 그런 부분이 분단의 현실을 넘어 어려웠던 과거의 역사를 자꾸 떠올리게 했다.

타이완은 간체자를 쓰지 않아 상점 간판 및 여러 안내판 읽기가 수월했다. 우리의 일정은 도착하자마자 국립고궁박물관을 보고, 그다음 화롄(花蓮)의 타이루거협곡(太魯閣), 야시장, 예류(野柳)해양공원, 스펀(十分), 지우펀, 그리고 중정기념당 등을 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중 나는 고궁박물관과 중정기념당에 관심이 갔다. 전에 베이징(北京)을 여행하면서 만리장성, 자금성 등을 둘러보며 감탄했지만 뭔가 반쪽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베이징을 여행했을 때 가졌던 빈 반쪽을 마저 채운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중국 황제들이 자금성에 모아 놓았던 수 집품을 중심으로 중국 송대, 원대, 명대, 청대 등 네 왕조에 걸쳐 내려온 국보급 유물 약 6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도자기, 옥기, 희귀 도서와 문서, 회화 등을 한꺼번에 전시하지 못해 유물들을 돌아가며 전시한다고 한다. 유물 뒤의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감상한 작품들은 대단하고 흥미로웠다. 그중 한 뼘 크기의 취옥백채(翠玉白菜, 옥배추) 앞에서 그 섬세한 조각과 옥색의 아름다움에 빠져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치열했던 국공(국민당과 공산당) 내전 와중에 5,000여 년의 중국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각종 유물 및 예술품을 옮겨온 것이 참 놀라웠다. 어느 나라든 자기들의 역사와 유물을 중히 여기고, 그것들을 보존함으로써 나라의 자존심을 지킨다. 그런데 유물로 보면 타이완이 중국을 대표하는 것 같다.

여행 셋째 날 중정기념당을 방문하니 장제스(蔣介石) 총통사진과 중화민국 국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어렸을 때 짜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가면 벽에 걸려 있던 사진과 국기라 반갑고 친숙했다. ‘중정(中正)’은 장제스의 본명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기념일 100주년 행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나는 기념당을 돌아보는 내내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떠올랐다. 눈에 익숙한 사진 앞에 섰다. 장제스 총통, 루스벨트 대통령, 처칠 수상, 쑹메이링(宋美齡) 여사, 넷이 앉아서 담소하고 있는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카이로회담(1943.11) 때 찍은 사진이어서다.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쓴 장제스가 고맙고 뒤에서 내조한 쑹메이링이 남 같지 않게 느껴졌다.

모자를 손에 들고 루스벨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장제스, 줄무늬 넥타이를 하고 몸을 장제스 쪽으로 약간 기울이며 뭔가를 말하는 루스벨트, 하얀 양복에 하얀 구두를 신고 쑹메이링(宋美齡)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는 처칠, 예쁜 얼굴을 갸웃하고 처칠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담소하는 쑹메이링. 그들의 모습은 마치 친척 결혼식장에 와서 담소하는 아저씨, 아주머니처럼 보였다.

<카이로선언>의 핵심 사안으로 그들은 대일전(對日戰)에 서로 협력할 것을 협의하였고, 대한민국 독립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들의 담화 속에 대한민국의 독립 이야기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역사는 인간의 이익과 친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시아에 여러 식민지를 둔 영국이나 미국이 일본 식민지 상태에 있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처음부터 도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또한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고 있지 않았는가.

중국, 영국, 미국 연합군의 목표가 일본의 패망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대표들이 장제스를 설득했고, 장제스는 루스벨트를, 루스벨트는 처칠을 설득했다. 장제스 뒤에서 영어로 내조한 쑹메이링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쑹메이링은 1966년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한 공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기도 했다. 쑹메이링은 송씨(宋氏) 세 자매를 그린, 홍콩에서 제작한, 영화 <송가황조>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영화를 보며 중국의 근현대사를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왔고, 6.25전쟁 때도 우리나라를 지원한 타이완과 대한민국은 1992년 8월 단교(斷交)했다. 우리가 예전에 ‘중공’이라고 칭했던 중국과 국교를 맺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타이완 국민은 분노했고 항공기 운항 금지, 한국산 과일 수입 거부 등, 보복 조치도 있었다. 그런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니 타이완 국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타이완 여행은 중국의 오래된 유물들을 볼 수 있었고, 특히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의미 있었다. 연합군 대표 3인의 담화 속 미소를 진 얼굴에 둥근 검은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고뇌에 찬 김구 주석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립을 위해 싸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들을 보며 장제스는 “힘없는 저들도 독립을 위해 저렇게 싸우는데 우리도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과 타이완의 관계를 생각하니 여행의 뒷맛이 달곰씁쓸하다. 타이완에는 어려웠던 한국의 과거가 회색 사진으로 붙어 있다. 역사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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