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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 백일장 2

자칭 '한자홍보대사'

문정일 목원대학 퇴임

무더운 여름철, 에어컨이 없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계속해서 하품을 하거나 졸고 있는 등 분위기의 반전(反轉)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우,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한자(漢字)를 활용하는 두 가지 단골 메뉴가 있다. 그중의 하나는 특정한자를 파자(破字)하여 설명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특정 한자어의 독음(讀音)을 묻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학생들의 졸음을 쫓아주거나 한자공부의 동기를 유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2~3분 정도에 불과하므로 감히 추천함직한 경제적인 메뉴라고 말하고 싶다.

재미있는 한자 파자의 문제는 《看(볼 간)》자다. ‘看’을 파자하면 ‘손 수(手) 아래 눈 목(目)’이 된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눈 目 위에 손 手’이니 ‘손을 눈 위에 올려놓은 글자’가 ‘볼 간(看)’이라는 뜻이다. 출제자가 이 뜻을 설명하기 위하여는 실제의 연기(演技)가 필요하다. 예컨대, “우리 아이가 어디로 갔나?”를 예문으로 설명하자면 오른손을 오른 눈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아이 찾는 시늉을 하되 두어 번 반복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렇듯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 어린애를 찾을 때나 또는 날씨가 화창한 날, 야외에서 먼 곳을 바라보자면 손으로 햇빛을 가리기 위하여 손을 눈(혹은 눈썹) 위에 올려놓는다. 이것이 ‘볼 간(看)’자니 얼마나 재미있는 ‘글자의 짜임새’인가!

직장에서 은퇴하기 전, 강의실에서 있던 일이다. 어느 여름날 에어컨이 없는 교실의 분위기가 후텁지근하여 하품을 하는 학생의 수효가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이때 칠판에 ‘볼 간(看)’자를 파자하여 설명하고 나니 내용이 흥미로웠던지 더 이상 조는 학생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수업이 끝난 직후, 영어교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서울의 이름 있는 某여자대학 졸업생으로 우리 학교 영어교육과에 학사 편입한 학생(두 아이의 엄마)이 뒤따라 나오더니 “교수님, 저~ 교수님께 한자 개인지도를 받고 싶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허지만 영어교사가 되는 것이 우선이니까, ‘임용고사’에 먼저 합격하고 나서 찾아와, 알았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학기가 끝나면서 나는 정년퇴임하여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였다.

한자단어의 독음을 묻는 단어는 《斟酌》이란 두 글자다. 이 두 글자를 칠판에 크게 써놓고 독음을 말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斟酌》이란 단어의 독음을 물었을 때, 단번에 정답이 나온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보통의 경우, 학생들은 우선 ‘斟’의 왼쪽 부분의 ‘甚(심할 심)’을 생각하고 ‘酌’의 왼쪽 부분이 ‘술 주(酒)’와 비슷하다는 데서 ‘심주’라고 읽는 학생이 나오는가 하면 왼쪽의 ‘甚(심할 심)’이 ‘基(터 기)’와 비슷하니 ‘기주’라고 읽는 등 엉뚱한 대답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의 대학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해프닝이다.

이때가 바로 ‘자칭 한자홍보대사’가 학생들을 점잖게 골려주기 위한 ‘연극’을 전개해야 할 시간이다. “자네들, 정말 이 두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나? 전혀 ‘짐작’도 가지 않나? 어쩌면 ‘짐작’은 갈 듯한데~” (여전히 강의실에는 침묵이 흐른다) “내가 여기서 정답을 말해주지. ‘斟酌’—이 두 글자의 독음은 ‘짐작’이야!”

학생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답을 알게 되어 환호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출제자가 여러 차례 ‘짐작’이란 힌트를 말해주었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自愧感)의 표정도 읽을 수가 있다. 이때 출제자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사실상, 이 글자는 나도 잘 모르던 글자였는데 한자1급시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글자라구!” 이 한 마디를 듣고 나면 학생들은 이 한자어가 상당한 수준의 한자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짐작(斟酌)이라는 말은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림’인데 이 단어의 어원상 배경은 동서양이 비슷하니 참으로 재미가 있다. ‘짐작’의 ‘짐(斟)’은 ‘술권할 짐/머뭇거릴 짐’이요, ‘작(酌)’은 ‘술권할 작’이다. 상대방의 ‘주량(酒量)’을 모르니 ‘술을 따르는 사람’이 머뭇거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짐작’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술이나 음료수를 잔에 따르면서 잔을 받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 “Say when!”이다. ‘내가 멈출 때를 말해달라(Say when I should stop pouring)’의 뜻이니 ‘짐작’을 암시하는 말이다.

학생들의 분위기 전환을 이용한 이 교육방법에는 다소 ‘장난 끼’가 들어 있으나 ‘학생들로 하여금 졸음을 쫓게 하고 한자공부에 재미를 유도하자’는 ‘두 마리 토끼잡이’의 측면에서 ‘자칭 한자홍보대사’로서의 역할과 목표는 상당 부분 성취한 셈이 된다.

TP 백일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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