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준비로
자유로운 새 삶을 찾은
느티나무 선생님

곽준수 영산대학교 퇴임

변방의 느티나무
군 전역과 대학 졸업 후, 늦게 붙은 공부 재미에 박사학위를 하고 농촌진흥청 석사공채 1기로 직장의 둥지를 틀었다. 농가 현장을 누비며 애로사항를 듣고, 밤새 해결책을 찾던 연구생활 15년은 현장실무 안목을 키워 주었고, 자칫 이론에만 매몰 되기 쉬운 대학교수의 연구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 그들과 함께 농촌에 뼈를 묻을 각오였으나, 그들을 지도할 더 많은 인재의 육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든 게 열악한 지방사립대였지만 제자들의 꿈을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내게 제자들은 느티나무라는 별명을 주었고, 지금도 그 별명을 고맙고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살다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나 찾아와 쉬고 재충전하여 떠날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선생님이 되자고 노력했다. 130여 편의 연구논문과 보고서, 8건의 특허출원, 50여 권의 저서 출간, 학생 진로지도, 산학협력, 취업 후 학생들의 현장 지도 등 모든 게 힘들었지만, 늦은 밤 “교수님 저 취업했습니다” 하는 전화가 고마웠고, 현장방문 때 “좋은 학생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임직원들의 말씀에 피로를 잊었다.

미리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학과장, 학장, 교직부장, 대학원장 등 보직 봉사를 하면서, 행정은 물론 모든 연구와 교육, 산학협력, 평생교육 등 많은 일들을 항상 은퇴 후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정리했다. 강의자료
는 주제별로 정리해두고, 현장 애로사항 해결 자료들은 차후 연구와 강의주제가 되었다. 매일 읽은 인문학 고전은 구체적 서평(書評)으로 정리하고, 매 주말 고명하신 스승님을 찾아 10여 년을 공들인 동양 전통의약 공부는 은퇴 후의 내 인생을 바꾸는 핵심영양소가 되었다. 40여 년간 찍어온 약초와 약재 사진들은 주제별로 정리하여, 한 권, 또 한 권 후학들의 작은 징검다리가 될 책이 되어 나왔다.

위기를 기회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전문강사의 길
호사다마랄까? 정년을 3년 정도 앞두고 급격한 건강 악화에, 어머니마저 병환이 깊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걱정하던 아내도 나의 치밀한 ‘은퇴 후의 준비된 계획’을 듣고는 조기 퇴직에 동의해주었다. 먼저 건강을 챙겨야 했고, 노모의 구환이 시급했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마음 편했다. 그렇게 1년여… 그동안 구상해 온 계획을 다듬으며 건강 회복에 전력했다.
건강이 회복되고,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시니어교육전문강사, 부산시휴먼북도서관 휴먼북, 한국지도자아카데미나 한국약용작물교육협회 등의 교수부장이나 고문을 맡아 교육과정 개발, 교강사 육성, 교재편찬 등 그동안 준비했던 역량을 발휘하면서 각종 기관단체의 ‘시니어교육’과 ‘귀농귀촌 교육과정’에 기획단계부터 도움을 드렸다. 그것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여, 은퇴 전 1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준비 내용과 고령 사회가 되면 시니어를 위한 복지정책은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현장에 적용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또한 ‘귀농귀촌 교육과정’은 청년 일자리와 노인 일자리가 경쟁이 아닌 보완적 상생을 이룰수 있는 공간인 농촌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특별한 공을 들였다.

좋은 강사를 구하기가 어렵다?
시·군 지자체와 시니어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단체들을 찾아 그동안 정교하게 준비해온 교육과정을 교육 담당자들에게 제공하고, 그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교육과정 개발과 좋은 강사 구하기’에 도움을 드렸다. 준비해온 나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동시에 건강강좌를 위한 보조자료로, 재직 때부터 해오던 약초 관련 저서출간을 계속했다. 그동안 축적된 약초 사진을 정리하여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일반인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서를 겸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다. 나의 작은 재능을 누군가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고 갈 수 있다는 것은 참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한두 군데서 교육성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점차 교육 요청이 늘어났다. 기관단체 교육 담당자들은 좋은 프로그램과 강사를 구하기 위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처음 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많은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농정원 2017년도 우수강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퇴직은? 자유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새로운 기회
은퇴를 앞둔 후배 선생님들께 권한다. “눈 딱 감고 3년만 준비 하세요. 인생 1모작에서 가장 잘하던 것이든, 밥벌이 때문에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이든…”
물론 준비 기간이 길고 정교할수록 성공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미처 준비를 못했더라도 낙담하지 말자. 지금부터 딱 3년만 준비하자. 생각해보니 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재능을 조금 일찍 발견했고, 평소 모든 자료를 잘 정리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책 읽고 글 쓰고, 강의하는 데서 보람을 얻는 직업적 특성을 조금 일찍 깨닫고 준비를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천직인 선생님이 퇴직 후 훨씬 자유롭게 재능을 기부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원거리 강의 때 운전을 도와 동행하는 아내를 위해 그 지역의 맛집을 찾고, 명소를 찾아 좋은 시간을 함께하며 돈독해진 부부애는 덤이다. 그저 감사한 일이다. 퇴직 후 더 바빠진 이 삶의 기회가 어찌 나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함께해준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오늘도 이모작 인생 끝나기 전 저서 출간 100권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밀린 원고 교정을 하려고 펼쳐 든 노트북 화면 위로 저녁 산책 길에 내게 해 준 아내의 말이 오버랩된다. “당신 그때 퇴직하기 정말 잘했어요!”

철저한 준비로 자유로운 새 삶을 찾은 느티나무 선생님

곽준수 영산대학교 퇴임

변방의 느티나무
군 전역과 대학 졸업 후, 늦게 붙은 공부 재미에 박사학위를 하고 농촌진흥청 석사공채 1기로 직장의 둥지를 틀었다. 농가 현장을 누비며 애로사항를 듣고, 밤새 해결책을 찾던 연구생활 15년은 현장실무 안목을 키워 주었고, 자칫 이론에만 매몰 되기 쉬운 대학교수의 연구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 그들과 함께 농촌에 뼈를 묻을 각오였으나, 그들을 지도할 더 많은 인재의 육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든 게 열악한 지방사립대였지만 제자들의 꿈을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내게 제자들은 느티나무라는 별명을 주었고, 지금도 그 별명을 고맙고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살다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나 찾아와 쉬고 재충전하여 떠날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선생님이 되자고 노력했다. 130여 편의 연구논문과 보고서, 8건의 특허출원, 50여 권의 저서 출간, 학생 진로지도, 산학협력, 취업 후 학생들의 현장 지도 등 모든 게 힘들었지만, 늦은 밤 “교수님 저 취업했습니다” 하는 전화가 고마웠고, 현장방문 때 “좋은 학생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임직원들의 말씀에 피로를 잊었다.

미리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학과장, 학장, 교직부장, 대학원장 등 보직 봉사를 하면서, 행정은 물론 모든 연구와 교육, 산학협력, 평생교육 등 많은 일들을 항상 은퇴 후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정리했다. 강의자료
는 주제별로 정리해두고, 현장 애로사항 해결 자료들은 차후 연구와 강의주제가 되었다. 매일 읽은 인문학 고전은 구체적 서평(書評)으로 정리하고, 매 주말 고명하신 스승님을 찾아 10여 년을 공들인 동양 전통의약 공부는 은퇴 후의 내 인생을 바꾸는 핵심영양소가 되었다. 40여 년간 찍어온 약초와 약재 사진들은 주제별로 정리하여, 한 권, 또 한 권 후학들의 작은 징검다리가 될 책이 되어 나왔다.

위기를 기회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전문강사의 길
호사다마랄까? 정년을 3년 정도 앞두고 급격한 건강 악화에, 어머니마저 병환이 깊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걱정하던 아내도 나의 치밀한 ‘은퇴 후의 준비된 계획’을 듣고는 조기 퇴직에 동의해주었다. 먼저 건강을 챙겨야 했고, 노모의 구환이 시급했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마음 편했다. 그렇게 1년여… 그동안 구상해 온 계획을 다듬으며 건강 회복에 전력했다.
건강이 회복되고,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시니어교육전문강사, 부산시휴먼북도서관 휴먼북, 한국지도자아카데미나 한국약용작물교육협회 등의 교수부장이나 고문을 맡아 교육과정 개발, 교강사 육성, 교재편찬 등 그동안 준비했던 역량을 발휘하면서 각종 기관단체의 ‘시니어교육’과 ‘귀농귀촌 교육과정’에 기획단계부터 도움을 드렸다. 그것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여, 은퇴 전 1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준비 내용과 고령 사회가 되면 시니어를 위한 복지정책은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현장에 적용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또한 ‘귀농귀촌 교육과정’은 청년 일자리와 노인 일자리가 경쟁이 아닌 보완적 상생을 이룰수 있는 공간인 농촌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특별한 공을 들였다.

좋은 강사를 구하기가 어렵다?
시·군 지자체와 시니어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단체들을 찾아 그동안 정교하게 준비해온 교육과정을 교육 담당자들에게 제공하고, 그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교육과정 개발과 좋은 강사 구하기’에 도움을 드렸다. 준비해온 나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동시에 건강강좌를 위한 보조자료로, 재직 때부터 해오던 약초 관련 저서출간을 계속했다. 그동안 축적된 약초 사진을 정리하여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일반인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서를 겸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다. 나의 작은 재능을 누군가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고 갈 수 있다는 것은 참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한두 군데서 교육성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점차 교육 요청이 늘어났다. 기관단체 교육 담당자들은 좋은 프로그램과 강사를 구하기 위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처음 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많은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농정원 2017년도 우수강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퇴직은? 자유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새로운 기회
은퇴를 앞둔 후배 선생님들께 권한다. “눈 딱 감고 3년만 준비 하세요. 인생 1모작에서 가장 잘하던 것이든, 밥벌이 때문에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이든…”
물론 준비 기간이 길고 정교할수록 성공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미처 준비를 못했더라도 낙담하지 말자. 지금부터 딱 3년만 준비하자. 생각해보니 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재능을 조금 일찍 발견했고, 평소 모든 자료를 잘 정리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책 읽고 글 쓰고, 강의하는 데서 보람을 얻는 직업적 특성을 조금 일찍 깨닫고 준비를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천직인 선생님이 퇴직 후 훨씬 자유롭게 재능을 기부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원거리 강의 때 운전을 도와 동행하는 아내를 위해 그 지역의 맛집을 찾고, 명소를 찾아 좋은 시간을 함께하며 돈독해진 부부애는 덤이다. 그저 감사한 일이다. 퇴직 후 더 바빠진 이 삶의 기회가 어찌 나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함께해준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오늘도 이모작 인생 끝나기 전 저서 출간 100권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밀린 원고 교정을 하려고 펼쳐 든 노트북 화면 위로 저녁 산책 길에 내게 해 준 아내의 말이 오버랩된다. “당신 그때 퇴직하기 정말 잘했어요!”

퇴직 이후가
인생의 황금기이다

장길환 동명대학교 퇴임

내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은 세계 3대 컵 박물관의 하나인 강릉의 환희 컵 박물관이다. 소장유물은 현재 4,500여 점 정도이고, 세계 76개국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공사립 박물관 중에서 외국의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일 것이다.
내가 교육자였고, 디자인을 했었기 때문에 박물관의 시스템도 과감히 시대에 맞게 완비하여 NFC와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 되었다. 2020년에는 강릉의 유명한 커피거리인 안목해변으로 이전하여 Fantaseum이라는 건평 2,212.56m²의 복합 문화시설을 건립하여 새로운 미술관 개관을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 중에서 빅3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미술관은 국립박물관도 소장 못 하고 있는 고대 간다라 미술의 조각품들과 크메르 왕조 조각의 진품들을 국내에서 볼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 될 것 이다.
오늘날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것은 내가 교직에 재직할 때부터 나의 퇴직 후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웠고, 그 실천을 빈틈 없이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교직생활은 대한민국 교직의 화석과도 같다. 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다가 가정형편으로 갈 수 없게 되자 교육대학에 갔고, 생년월일이 늦어 발령을 못 받자 초등학교 임시교사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4년제 대학에 다시 진학했고,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 외국 4년제 대학교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 나는 ‘순차적으로 올라간 가장 다양한 교직 경력자’라는 한국 기록을 갖게 되었고, 한국 기록원으로부터 인증도 받았다.
밀양의 세종중학교에 재직했던 1978년에 나는 그 부근에서 출토된 신라의 토기 하나를 구입했다. 비록 깨어져 접착제로 붙인 컵이었지만 허리가 잘록하고 손잡이가 멋진 곡선을 이루는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Mug이었다. 손잡이가 없는 완(碗)만을 사용하던 아시아 존(zone)에 손잡이가 있는 이런 Mug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형태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때부터 컵을 찾아 떠나는 나의 여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40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소장한 컵이 1,500개를 넘길 때 나는 동명대학교로 직장을 옮겼고, 그때 박물관 건립계획을 구체화했다. 제일 먼저 건립자금 마련 계획을 세워야 했다. 내가 받는 월급으로 그런 새로운 사업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여러 방안을 구상하였는데 부동산만큼 목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부산 근교 저렴한 가격에 넓은 면적의 임야와 밭을 샀다. 나는 몇 년 후 그 밭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백송 씨앗을 파종했다. 주말은 농장에서 사는 농부였다. 이렇게 10년을 기른 백송이 나중에 주 수입원이 되었고, 그때 매입해 두었던 토지들이 LH공사 개발에 수용되면서 박물관의 자금이 마련된 것이다.

내가 박물관이라는 문화사업을 생각한 것은 ‘지금은 모두 경제 욕구만을 추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 그동안 굶주렸던 문화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멋지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재직 시 퇴직 후의 나의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지 않았다면 사업자금 계획도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그만한 자금의 마련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박물관을 세우고 처음 3년은 적자를 기록하여 계속 내가 가진 자금이 투입되어야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금 전국 대다수의 사립박물관처럼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어 박물관의 순기능을 할 수 없게 될 상황에 처했다. 이때 나는 과감히 수입창출을 위해 박물관의 대변신을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에이전트 망을 구축하여 그 나라의 명품 컵을 싼값에 수입하여 판매하게 되었고, 컵과 함께 오르골과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카페를 만들어 커피, 차, 음료수, 팥빙수 등을 판매하여 수입의 다변화를 시도했고, 최첨단 체험 시스템인 NFC와 AR 증강현실 체험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 컵 만들기 체험과 커피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문화부나 문화재단의 각종 국가사업에 선정되어 수입 창출과 함께 박물관의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지금은 사계절 끊임없이 관람객과 학생들이 찾는 박물관의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박물관이 흑자로 돌아서게 되었고 순수익이 연 1억 원을 넘기게 되자 제2의 Fantaseum 사업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나는 현직에 계시는 분들에게 권한다. 적어도 퇴직 후 30년은 이 세상에 살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 30년을 보내기에는 그 긴 시간이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구멍가게 같은 작은 사업을 시작하여 대기업으로 키울 정도의 충분한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현직에 있을 때 퇴직 후의 계획을 잘 세우고, 퇴직 후 즉시 그것을 시작한다면 새로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꼭 사업이 아니어도 좋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문인으로 등단할 계획을 세워 도전하면 한국의 유명한 작가까지 될 수 있고,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10년 이상 정진하여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화가가 되고도 남는 시간이다. 취미를 넘어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는 야심은 육체의 노화를 분명하게 늦추어 줄 것이다. 교직 때의 전공이나 교직과 연관된 것은 새 사업의 걸림돌이 된다. 바로 고정관념 때문이다. 교직 때의 전공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구가하고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감한 결단력만 있다면 말이다.
유년기와 방황의 청년기를 제외한다면 인생 90세를 기준으로 퇴직 후 30년은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시기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이 시기에 무엇을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의 자금력과,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욕구와, 노련한 경험이 있어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10년 후 또 다른 멋진 나를 위해 재직하고 있는 지금 직장에서 퇴직 후 삶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볼 일이다.

퇴직 이후가
인생의 황금기이다

장길환 동명대학교 퇴임

내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은 세계 3대 컵 박물관의 하나인 강릉의 환희 컵 박물관이다. 소장유물은 현재 4,500여 점 정도이고, 세계 76개국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공사립 박물관 중에서 외국의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일 것이다.
내가 교육자였고, 디자인을 했었기 때문에 박물관의 시스템도 과감히 시대에 맞게 완비하여 NFC와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 되었다. 2020년에는 강릉의 유명한 커피거리인 안목해변으로 이전하여 Fantaseum이라는 건평 2,212.56m²의 복합 문화시설을 건립하여 새로운 미술관 개관을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 중에서 빅3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미술관은 국립박물관도 소장 못 하고 있는 고대 간다라 미술의 조각품들과 크메르 왕조 조각의 진품들을 국내에서 볼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 될 것 이다.
오늘날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것은 내가 교직에 재직할 때부터 나의 퇴직 후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웠고, 그 실천을 빈틈 없이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교직생활은 대한민국 교직의 화석과도 같다. 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다가 가정형편으로 갈 수 없게 되자 교육대학에 갔고, 생년월일이 늦어 발령을 못 받자 초등학교 임시교사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4년제 대학에 다시 진학했고,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 외국 4년제 대학교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 나는 ‘순차적으로 올라간 가장 다양한 교직 경력자’라는 한국 기록을 갖게 되었고, 한국 기록원으로부터 인증도 받았다.
밀양의 세종중학교에 재직했던 1978년에 나는 그 부근에서 출토된 신라의 토기 하나를 구입했다. 비록 깨어져 접착제로 붙인 컵이었지만 허리가 잘록하고 손잡이가 멋진 곡선을 이루는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Mug이었다. 손잡이가 없는 완(碗)만을 사용하던 아시아 존(zone)에 손잡이가 있는 이런 Mug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형태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때부터 컵을 찾아 떠나는 나의 여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40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소장한 컵이 1,500개를 넘길 때 나는 동명대학교로 직장을 옮겼고, 그때 박물관 건립계획을 구체화했다. 제일 먼저 건립자금 마련 계획을 세워야 했다. 내가 받는 월급으로 그런 새로운 사업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여러 방안을 구상하였는데 부동산만큼 목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부산 근교 저렴한 가격에 넓은 면적의 임야와 밭을 샀다. 나는 몇 년 후 그 밭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백송 씨앗을 파종했다. 주말은 농장에서 사는 농부였다. 이렇게 10년을 기른 백송이 나중에 주 수입원이 되었고, 그때 매입해 두었던 토지들이 LH공사 개발에 수용되면서 박물관의 자금이 마련된 것이다.

내가 박물관이라는 문화사업을 생각한 것은 ‘지금은 모두 경제 욕구만을 추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 그동안 굶주렸던 문화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멋지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재직 시 퇴직 후의 나의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지 않았다면 사업자금 계획도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그만한 자금의 마련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박물관을 세우고 처음 3년은 적자를 기록하여 계속 내가 가진 자금이 투입되어야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금 전국 대다수의 사립박물관처럼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어 박물관의 순기능을 할 수 없게 될 상황에 처했다. 이때 나는 과감히 수입창출을 위해 박물관의 대변신을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에이전트 망을 구축하여 그 나라의 명품 컵을 싼값에 수입하여 판매하게 되었고, 컵과 함께 오르골과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카페를 만들어 커피, 차, 음료수, 팥빙수 등을 판매하여 수입의 다변화를 시도했고, 최첨단 체험 시스템인 NFC와 AR 증강현실 체험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 컵 만들기 체험과 커피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문화부나 문화재단의 각종 국가사업에 선정되어 수입 창출과 함께 박물관의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지금은 사계절 끊임없이 관람객과 학생들이 찾는 박물관의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박물관이 흑자로 돌아서게 되었고 순수익이 연 1억 원을 넘기게 되자 제2의 Fantaseum 사업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나는 현직에 계시는 분들에게 권한다. 적어도 퇴직 후 30년은 이 세상에 살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 30년을 보내기에는 그 긴 시간이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구멍가게 같은 작은 사업을 시작하여 대기업으로 키울 정도의 충분한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현직에 있을 때 퇴직 후의 계획을 잘 세우고, 퇴직 후 즉시 그것을 시작한다면 새로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꼭 사업이 아니어도 좋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문인으로 등단할 계획을 세워 도전하면 한국의 유명한 작가까지 될 수 있고,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10년 이상 정진하여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화가가 되고도 남는 시간이다. 취미를 넘어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는 야심은 육체의 노화를 분명하게 늦추어 줄 것이다. 교직 때의 전공이나 교직과 연관된 것은 새 사업의 걸림돌이 된다. 바로 고정관념 때문이다. 교직 때의 전공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구가하고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감한 결단력만 있다면 말이다.
유년기와 방황의 청년기를 제외한다면 인생 90세를 기준으로 퇴직 후 30년은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시기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이 시기에 무엇을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의 자금력과,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욕구와, 노련한 경험이 있어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10년 후 또 다른 멋진 나를 위해 재직하고 있는 지금 직장에서 퇴직 후 삶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볼 일이다.

유튜버로 시작하는
인생 3모작

강철진 선일여자고등학교 퇴임

35년의 교직생활을 끝으로 2015년 2월에 명예퇴직을 하고 좀 쉬려고 하는데 생활스포츠지도사 시험이 있다고 해서 3월 15일부터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따려면 실습기간 90시간을 이수해야 하는데 현직에 있을 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마침 퇴직도 했겠다 ‘너 한 번 붙어 보자’하는 식으로 도전하였다.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면접 및 실기, 3차 실습을 끝으로 그해 11월 2일 최고령으로 생활스포츠지도사2급(보디빌딩)자격증을 취득하였다.
한 달 후엔 동네 헬스클럽 관장(경영전권을 위임받은 월급관장)이 되어 PT지도 등 헬스트레이너로서 화려한(?)인생 2막을 시작하였다. 경영이 어려워 나한테 위임한 동네헬스클럽 인데다 처음엔 늙은 관장이 왔다고 뒷말이 무성하였으나, 평소에 독서로 개발한 서비스마인드와 자격증취득과정에서 배운 이론과 실습을 과감히 실천하여 “우리 헬스에 저런 관장이 온다는 것은 동네주민의 행운”이란 말까지 듣고 보니, 나의 어깨는 저절로 으쓱거리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PT수입은 전부 내꺼라 주머니 사정도 괜찮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이것이 내가 바라는 인생이모작인가?”라는 물음에,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되었고 미련 없이 관장직을 그만두고 국회도서관으로 가서 ‘1만 권 독서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고전과 현재를 넘나들며 트렌드에 필이 꽂혔는데, 가상화폐에 2천만 원을 투자해 몇 달 만에 5천만 원을 만들고는 얼른 빠져나왔다(가상화폐 권하지 않습니다).
이제 와이프한테 손 안 벌려도 될 만큼 비자금도 마련하였으니, 또 다른 프로젝트를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학교 재직 시에 엑셀을 좋아하긴 했지만, ‘함수’를 사용할 줄 모르고 퇴직한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엑셀의 정수는 함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왔었기에 2018년 5월부터 ‘엑셀함수’를 배워보기로 하고, ‘컴퓨터활용능력2급’에 도전하여, 4전 5기로 합격 하고, 사학연금공단을 통해 신청한 진로상담사2급 연수를 통해 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이제 나는 해마다 한두 가지의 테마를 정해 공부하기로 결심 하였고, 3월에는 사학연금공단에서 기획한 ‘2019년도 퇴직교직원 지원 단기강좌’에 지원하여 3월 22일 드디어 ‘50세 이후의 체형관리 전략’이란 제목으로 체형관리 강사가 되어 여의도 무대에 데뷔하였다!
2019년 5월에 우연히, ‘서울시50+재단과 LG U+ 가 지원하는 유튜버스쿨’에 지원서를 냈고, 10명을 뽑는데 700명이 지원 하였다고 하는데 운 좋게 합격하였다. 유튜버가 되는데 필수 핵심내용으로 구성된 3개월의 교육과정이 전액무료였고, 나는 거기서 수석으로 졸업하며 상금 500만 원과 U+tv 978번 채널을 배정받았다. 여기 원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유튜브를 통해 ‘컴활2급’자격증 공부를 했으면서도), ‘유튜브 구독’을 하면 ‘신문 구독’처럼 매달 돈을 얼마씩 내는 걸로 착각할 정도로 ‘유튜브 문맹자’였다.
그러나 유튜버 스쿨에 입학한 첫날 완전히 반해, 유튜브에 미쳐버렸고, 급기야는 영예의 1등을 하며 꿈에도 상상 못 할 개인방송 채널(유튜브 채널이 아닌)을 최소 6개월은 보유하게 되었으니, 이 엄청난 행운을 나 혼자만 누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상금의 절반인 250만 원을 나의 전반생의 삶을 가꿔온 선일여고에 기증하였다.
이제 나는 유튜버가 되어 인생 3모작을 시작하였고, 이것이 내가 찾던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 뛰기 시작한다.

지난날 내가 몸에 맞는 바지가 없을 정도로 몸이 뚱뚱하여 엄청 고생을 하다가 독한 마음을 먹고 살을 빼고, 만든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보디빌딩에 입문하여, 보디빌딩대회를 열 번 출전하여 서울시장배대회에서 1위를 하는 등 20년 동안 산전, 수전, 시가지전까지 거치면서 유지해온 체형관리 비법과 헬스장에서 홀대받는 60대 이후의 시니어분들을 위한 맞춤형 운동방법, 운동기구의 올바른 사용법, 평소의 몸매관리 방법, 건강유지 방법 등을 ‘강철헬스전략’이라는 나의 유튜브를 통해 전수해드림과 동시에 지난 35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 및 재미난 수학시간을 위해 고심하며 만든 수학노래(초등학교수학 102곡, 중학교수학 66곡, 고등학교수학 226곡)를 유튜브에 영상으로 제작하여 과제가 아닌 축제의 수학시간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더 나아가 이미지 트레이닝, 명상, 습관 개조, 시간관리, 기억법 등 하루 종일 일은 해도 하루 종일 쉬지는 못하는 나의 삶의 궤적을, 시대의 고마운 선물인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며 인생 N막을 열어나갈 생각이다. 시간 많아 좋지요, 잠도 얼마 없어 좋지요, 이렇게 좋은 가슴 뛰는 삶이 퇴직 뒤에 숨어 있었다니!
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의 사랑하는 유튜브채널 ‘강철헬스전략’, ‘나의 U+ tv 978번 채널’과 함께, 건강 100세의 선구자가 되어 명실상부한 Korea Grandpa가 되는 날까지 전인미답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한다.

유튜버로 시작하는
인생 3모작

강철진 선일여자고등학교 퇴임

35년의 교직생활을 끝으로 2015년 2월에 명예퇴직을 하고 좀 쉬려고 하는데 생활스포츠지도사 시험이 있다고 해서 3월 15일부터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따려면 실습기간 90시간을 이수해야 하는데 현직에 있을 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마침 퇴직도 했겠다 ‘너 한 번 붙어 보자’하는 식으로 도전하였다.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면접 및 실기, 3차 실습을 끝으로 그해 11월 2일 최고령으로 생활스포츠지도사2급(보디빌딩)자격증을 취득하였다.
한 달 후엔 동네 헬스클럽 관장(경영전권을 위임받은 월급관장)이 되어 PT지도 등 헬스트레이너로서 화려한(?)인생 2막을 시작하였다. 경영이 어려워 나한테 위임한 동네헬스클럽 인데다 처음엔 늙은 관장이 왔다고 뒷말이 무성하였으나, 평소에 독서로 개발한 서비스마인드와 자격증취득과정에서 배운 이론과 실습을 과감히 실천하여 “우리 헬스에 저런 관장이 온다는 것은 동네주민의 행운”이란 말까지 듣고 보니, 나의 어깨는 저절로 으쓱거리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PT수입은 전부 내꺼라 주머니 사정도 괜찮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이것이 내가 바라는 인생이모작인가?”라는 물음에,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되었고 미련 없이 관장직을 그만두고 국회도서관으로 가서 ‘1만 권 독서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고전과 현재를 넘나들며 트렌드에 필이 꽂혔는데, 가상화폐에 2천만 원을 투자해 몇 달 만에 5천만 원을 만들고는 얼른 빠져나왔다(가상화폐 권하지 않습니다).
이제 와이프한테 손 안 벌려도 될 만큼 비자금도 마련하였으니, 또 다른 프로젝트를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학교 재직 시에 엑셀을 좋아하긴 했지만, ‘함수’를 사용할 줄 모르고 퇴직한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엑셀의 정수는 함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왔었기에 2018년 5월부터 ‘엑셀함수’를 배워보기로 하고, ‘컴퓨터활용능력2급’에 도전하여, 4전 5기로 합격 하고, 사학연금공단을 통해 신청한 진로상담사2급 연수를 통해 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이제 나는 해마다 한두 가지의 테마를 정해 공부하기로 결심 하였고, 3월에는 사학연금공단에서 기획한 ‘2019년도 퇴직교직원 지원 단기강좌’에 지원하여 3월 22일 드디어 ‘50세 이후의 체형관리 전략’이란 제목으로 체형관리 강사가 되어 여의도 무대에 데뷔하였다!
2019년 5월에 우연히, ‘서울시50+재단과 LG U+ 가 지원하는 유튜버스쿨’에 지원서를 냈고, 10명을 뽑는데 700명이 지원 하였다고 하는데 운 좋게 합격하였다. 유튜버가 되는데 필수 핵심내용으로 구성된 3개월의 교육과정이 전액무료였고, 나는 거기서 수석으로 졸업하며 상금 500만 원과 U+tv 978번 채널을 배정받았다. 여기 원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유튜브를 통해 ‘컴활2급’자격증 공부를 했으면서도), ‘유튜브 구독’을 하면 ‘신문 구독’처럼 매달 돈을 얼마씩 내는 걸로 착각할 정도로 ‘유튜브 문맹자’였다.
그러나 유튜버 스쿨에 입학한 첫날 완전히 반해, 유튜브에 미쳐버렸고, 급기야는 영예의 1등을 하며 꿈에도 상상 못 할 개인방송 채널(유튜브 채널이 아닌)을 최소 6개월은 보유하게 되었으니, 이 엄청난 행운을 나 혼자만 누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상금의 절반인 250만 원을 나의 전반생의 삶을 가꿔온 선일여고에 기증하였다.
이제 나는 유튜버가 되어 인생 3모작을 시작하였고, 이것이 내가 찾던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 뛰기 시작한다.

지난날 내가 몸에 맞는 바지가 없을 정도로 몸이 뚱뚱하여 엄청 고생을 하다가 독한 마음을 먹고 살을 빼고, 만든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보디빌딩에 입문하여, 보디빌딩대회를 열 번 출전하여 서울시장배대회에서 1위를 하는 등 20년 동안 산전, 수전, 시가지전까지 거치면서 유지해온 체형관리 비법과 헬스장에서 홀대받는 60대 이후의 시니어분들을 위한 맞춤형 운동방법, 운동기구의 올바른 사용법, 평소의 몸매관리 방법, 건강유지 방법 등을 ‘강철헬스전략’이라는 나의 유튜브를 통해 전수해드림과 동시에 지난 35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 및 재미난 수학시간을 위해 고심하며 만든 수학노래(초등학교수학 102곡, 중학교수학 66곡, 고등학교수학 226곡)를 유튜브에 영상으로 제작하여 과제가 아닌 축제의 수학시간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더 나아가 이미지 트레이닝, 명상, 습관 개조, 시간관리, 기억법 등 하루 종일 일은 해도 하루 종일 쉬지는 못하는 나의 삶의 궤적을, 시대의 고마운 선물인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며 인생 N막을 열어나갈 생각이다. 시간 많아 좋지요, 잠도 얼마 없어 좋지요, 이렇게 좋은 가슴 뛰는 삶이 퇴직 뒤에 숨어 있었다니!
나의 사랑하는 생활, 나의 사랑하는 유튜브채널 ‘강철헬스전략’, ‘나의 U+ tv 978번 채널’과 함께, 건강 100세의 선구자가 되어 명실상부한 Korea Grandpa가 되는 날까지 전인미답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한다.